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며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습니다. 1990년 중반에는 1인당 GDP가 1만 달러를 돌파하며 한국은 아시아의 호랑이라 불리는 등 고도의 성장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 이면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산재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성장을 지속되지 못하고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금융위기를 넘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으로,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오늘은 IMF가 무엇인지, 외환위기가 왜 일어났는지, 어떻게 극복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IMF는 무엇이며, 외환위기는 누가 판단할까?
IMF는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의 약자로, 회원국이 외환 위기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때 자금을 빌려주고 구조 개혁을 돕는 국제기구입니다. 현재 190개국이 가입되어 있으며 우리나라는 1955년 8월 26일에 가입하였습니다.
그럼, ‘외환위기’는 누가 정하고 누가 선포하는 걸까요?
외환위기는 IMF가 정하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정부가 공식적으로 선언한다고 시작되는 것도 아닙니다. 외환위기는 국가의 외환보유액이 급격히 줄어들어 외채상환이나 국제결제에 필요한 외화를 조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때 '발생'하는 것이지, 누군가가 선포하여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위기가 심각하여 국가가 더 이상 외채를 상환할 수 없게 되는 등의 단계에 이르면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게 되고, 이때 국제사회는 해당 상황을 ‘공식적인 외환위기’로 인정하게 됩니다.
2. 얼마나 안좋았기에 IMF에 구조요청을 했나
당시 한국은 겉보기에는 성장 중이었지만, 대기업들의 차입경영, 금융기관의 부실대출, 정부의 환율 정책 등 구조적 취약점이 누적된 상태였습니다. 여기에 동남아 외환위기까지 겹치며 투자자들은 한국 시장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단기 외채 회수가 급증하면서 외환보유액은 급속도로 줄어들었습니다.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기 까지 많은 문제점이 있으나, 대표적인 원인을 쉽게 설명드리겠습니다.
1) 단기 외채의 급증과 외환보유고 부족
1990년대 국내은행들은 해외에서 단기로 돈을 빌려왔고, 국내기업에는 장기로 빌려주는 위험한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결국 빨리 갚아야 하는 외채는 많아졌지만 기업들에게는 늦게 갚아도 되게 끔 돈을 빌려줬으니 외환보유고가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외환보유액이 적으니 위기가 생겼을때 버틸 힘이 없었던 겁니다.
2) 외환관리정책과 환율 정책의 실패
정부는 원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높게 유지하려다 외화를 다 써버렸고, 그 결과 환율이 폭등하며 외채를 갚을 능력까지 상실됐습니다. 정부가 환율을 무리하게 방어하다가 외화가 바닥이 나고 시장에서는 신뢰가 추락한 것입니다.
3) 기업과 금융기관의 부실, 과도한 차입과 투자
대기업은 실리는 채우지 못하고 무리하게 덩치를 키웠고, 금융기관은 대기업에 돈을 막대한 돈을 빌려주면서 위험을 키워가면서 대기업의 연쇄 부도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기업도 은행도 빚을 너무 많이 지고 버티다가, 줄줄이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1997년 1월 한보그룹의 부도와 7월 기아자동차의 부도사태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4) 동남아 외환위기 등 국제 환경의 악화
설상가상으로 태국에서 시작된 외환위기는 아시아 국가 전체로 번지며 투자자들은 우리나라도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자금을 빼기 시작했습니다. 주변 나라들에 위기가 터지니, 한국도 위험하다고 판단해 외화가 빠져나가게 된 겁니다.
5) 거시경제 불균형과 경상수지 적자
수출은 줄고 수입은 늘어나며 외화는 계속 빠져나갔습니다. 외화가 들어오는 속도보다 나가는 속도가 빨라지니, 나가는 건 많고, 들어오는 건 적으니 외화보유액은 급속도로 줄어들었습니다.
이렇듯 정부는 더 이상 스스로 시장을 안정시킬 수 없다고 판단했고, 1997년 11월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벌어진 외환위기에 대한 최후의 대응책으로, 만약 구제금융을 요청하지 않았다면, 한국은 국가부도라는 더 큰 재앙을 맞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3. 고통스러운 구조조정과 국민들의 눈물겨운 노력
1997년 12월 IMF는 한국에 580억 달러를 지원하는 것을 결정하였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자금 지원에 그치지 않고 1. 금융시장 및 자본시장의 개방 2. 긴축적 거시경제 정책 3. 기업 구조조정 및 재벌 개혁 4. 노동시장 유현화 5. 환율제도 개편 외에도 공기업 민영화, 시장경쟁 촉진 등 경제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개혁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따라, 수많은 기업들이 문을 닫거나 해외에 매각되었습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량의 해고가 발생했고, 실업률은 7%대까지 치솟았습니다. 많은 회사원들이 회사를 떠나게 되며 이 시점부터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비정규직이 급증하면서 고용 불안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국민들은 국가위기라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 전국민이 자발적으로 위기를 극복하고자 나섰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모두 알고 있는 '금 모으기 운동'이었습니다. 결혼반지까지 내놓으며 나라를 구하려는 국민들의 모습은 세계를 감동시켰습니다. 실질적인 효과는 크게 없었지만, 위기 극복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금융감독원을 설립하고,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등을 통해 금융시스템이 훨씬 투명하고 건전해졌습니다. 이는 대외 신인도 향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위기 이후 한국은 외환보유액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늘려 외부 충격에 대한 방어력을 크게 강화했습니다.
또한,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IT 산업에 집중 투자하면서 놀라운 변화를 이뤄냈습니다.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과 함께 반도체, 디스플레이, 휴대폰 등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었죠.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글로벌 시장에서 선두주자로 발돋움했고, 한국은 명실상부한 IT 강국이 되었습니다.
4. 마무리
2025년 현재 한국 경제는 과거보다 훨씬 견고해졌지만, 가계부채, 저출산 등 새로운 도전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1997년의 교훈을 잊지 않고 미래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997년 외환위기는 분명 아픈 기억이지만, 동시에 한국을 더 강하게 만든 소중한 경험이기도 합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우리의 저력과, 어려울 때 하나로 뭉치는 국민들의 힘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진짜 경쟁력입니다.
2025년 6월 4일 이재명 대통령이 제21대 대통령으로써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이재명 정부와 국회, 그리고 기업, 그리고 국민들이 모두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고자 한다면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